김봉석_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
사회가 개별화·파편화될수록, 저출생·고령화·일과 가정 균형, 경력 단절 같은 문제나 요구가 많아질수록 공적 돌봄에 대한 요구나 비중도 높아진다. 요즘 총선을 맞이해 각 후보들마다 각종 보육과 교육 관련 공약을 내세우면서 자신이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또한 저출생 문제와 육아 부담 경감을 명분으로 2학기부터 ‘늘봄학교’전면 시행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돌봄과 방과후학교를 결합해 원하는 아동 모두 늘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도 1학기에 70여개 초등학교를 늘봄학교로 지정했고, 중등 출신의 정원외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늘봄행정업무를 전담하게 했다. 또 학교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고 돌봄·방과후교실를 정비하거나 초1, 2학년 교실을 리모델링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돌봄과 성장의 문제가 여성(어머니)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인적·물적·지역적 요소와 자원 등 총동원하는 복합적인 문제라는 의미이다. 여기엔 아동 당사자를 포함해 부모, 가족, 교육, 여성, 복지, 일자리, 행정 등 다양한 분야와 입장이 얽혀 있다. 놀이와 휴식을 원하는 아동의 입장, 일과 가정의 균형을 원하는 부모의 입장, 체계적인 지원 속에서 돌봄 업무를 하기 원하는 보육담당자의 입장, 안정적인 교육활동 운영을 바라는 학교 입장 등 복잡미묘한 이해관계 속에 얽혀 있다. 그만큼 세심하고 치밀한 준비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석열·이주호 교육부의 현재 늘봄학교 추진 과정을 보면 그러한 준비나 고려가 된 것으로 보이질 않는다.
과밀학급이나 거대학교의 경우 부족한 공간이나 교실 확보 문제, 양질의 늘봄프로그램 준비, 충분한 돌봄 인력 배치 등 산적한 현안이 한 둘이 아니다. 거기에 늘봄행정업무는 정원외 한시적 기간제 교사가, 늘어난 돌봄 시간은 단기간 채용 돌봄전담사가, 방과후수업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방과후강사가 담당한다. 늘봄학교가 저임금 단기간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돌봄을 하는 사람에 대한 낮은 처우와 고용 불안 문제는 늘봄학교의 불안정 운영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2학기부터 공무원 신분인 늘봄실장을 채용해 운영하겠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공무원총정원제나 공무원총액인건비 제도 등 각종 규제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대답을 내놓은 적 없다. 무엇보다 학교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아동 입장에서 정부는 어떤 돌봄이나 지원을 바라는지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다. 정책당국은 학교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아동의 관점에서 보면 하루 종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돌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떤 아동도 소외됨 없이, 신체적·정서적·지적·사회적으로 충분히 발달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체계적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와 지역사회, 시민이 함께 모여 바람직한 공적 돌봄의 방향을 합의하고, 치밀하고 세심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번 만들어진 틀이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총선용 빠른 돌봄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돌봄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출처: 함께하는 세상 통권 319호(20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