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혁_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요지경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상자 앞에 확대경을 달고 상자 안의 다양한 모습을 신기하게 보여주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세상의 신기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어느 유명가수의 노래 가사에서도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라는 가사로 공전절후의 히트를 한 바 있다.
지금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때 되면 돌아오는 철새들처럼 3지대론, 신당들이 만들어져 들썩이긴 하지만, 이번 총선만큼 이른바 제3의 정치세력발 혼란이 요지경인 적은 없었다. 보수당계열, 민주당계열, 진보정당계열에서 나온 정치인들이 모두 포함된 정당이 탄생하지를 않나. 진박감별사로 활동했던 조원진이 있는 우리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서 나온 송영길신당, 10%의 지지율에 육박하고 있는 조국신당, 나아가 열린민주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이 만든 새진보연합,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곧 만들어진 민주당의 위성정당까지. 마치 황금과 노예무역을 노리고 수많은 해적이 창궐하던 카리브해의 대해적 시대가 떠오르는 대정당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런 형국에서 총선의 전망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당들의 정확한 이름, 선거연합 상황까지 정확하게 알려면 매우 높은 수위의 정치 고관여층이거나 정당인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하고, 심지어 직업적 정당활동가들 마저도 헷갈려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하고 어지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우선 현재의 정당과 정치영역에서 적대적 이분법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제를 폭발시킨 건 준연동형비례제도의 탄생과 이에 대응해서 탄생한 거대양당의 비례위성정당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시민사회는 현행 소선구제 기반의 비례대표제가 여전히 한국사회의 다양한 균열과 갈등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보고, 의원정수 확대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한 세월 속에서 의원정수 확대는 국민들의 정치혐오 정서를 넘어서지 못했고, 연동형비례대표제도는 현행제도 하에서 받은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의 이해관계 속에서 지지부진하다가 어정쩡한 타협책으로 21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을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다.
그 과정과 도입 직후에도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위협을 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당시의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결과적으로 방관하였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우리는 동의한 바 없다는 명분으로 위성정당을, 더불어민주당은 그 위성정당에 맞서야 한다는 명분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서 제도의 도입취지를 전면적으로 박살내는 한편, 상대방에 비해 1%도 아쉬운 비례위성정당의 득표율을 거래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기 위한 정당들을 탄생시켜 버렸다.
국회에서 도입한 제도가 국회의원들과 원내정당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제도의 취지가 전면적으로 부정된 상황이 되었다. 제도가 원래 입법목표를 달성 못하는 일들은 종종 있어왔지만, 국회가 만든 법률을 국회의 구성원들이 박살내버리는 이런 참담한 상황이 도래해 버린 것이다.
결국,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의 정치화라는 정치민주제도의 확립을 위해 논의되었던 현행 민주주의의 불비례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기형적 형태로 양당제를 강화시킨 꼴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이를 부끄러워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게 더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은 제도를 파괴했고, 진보정당들은 여기에 편승해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했다. 각 원내정당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기초로 서로 간의 비판만 주고 받을 뿐, 우리사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왜 도입하려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외면했고 국회의원과 정당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도 져버린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지다 못해 땅속에 파묻힌 시대에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우선 현재의 불비례성을 해소하기 위한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와 재검토가 필요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의 확대 또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지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등 다양한 모델을 두고 논의를 시작하자. 두 번째로 새로운 선거제 개혁에 앞서 계속해서 적용될 현행 선거제 하에서는 위성정당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세 번째 권력은 나누어야 한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면 오히려 권력과 권위가 더 강력해지기 때문에 여전히 국민정서법에 가로막혀 있지만,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연합해서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해야 한다.
어려운 길, 어두운 길이다. 하지만 어둡고 어려운 길이니까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출처: 함께하는 세상 통권 318호(20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