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규 창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남 밀양 출신의 신학상 선생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란 그 시간을 떠나서 이해될 수 없고 <사람이란 그들의 부모보다 그들의 시대를 닮는다>고 한 명제와 같이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가 당대의 시대적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건물주가 꿈인 사회, 어쩌면 나도 자산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꿈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 시대의 꿈을 그대로 좇아간다.
우리는 왜 미래의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 보편적인 복지정책과 제도를 집합적으로 요구하기보다, 각자의 자산(예금, 주식, 주택, 투자 등) 보유와 증식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반공개발국가 이래로 국가는 가족책임주의와 사적탈상품화를 통하여 국가복지의 저발달을 기능적으로 대체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자산기반 사적복지체제 확장에 의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약화라는 전지구적 현상에 의해서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자가주택의 비율이 높은 사회일수록 주택비용이 높고, 보유자산 중 가장 큰 부부을 차지하며 질병, 실업, 은퇴와 같은 노동시장의 위험에 대처하는 사적보험기능(hedge)을 수행한다. 특히 주택가격과 주택 순자산(빚을 제외한 실제 자산)의 증가는 평생임금의 증가와 같은 효과를 가져와 시민들의 노동시장 위험 대처능력을 높이지만 국가에 대한 보편적인 사회복지정책과 재분배에 대한 요구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상충적인 효과가 존재한다.
반대로 자산가격이 붕괴되는 경우 정부의 복지프로그램과 재분배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증가한다.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사회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를 지지하기 보다 개인의 자산 취득을 위한 낮은 세율을 선호하게 된다. 특히, 주택가격상승이 가지는 사회복지정책 선호의 영향은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
좌파 유권자들은 개인적인 특성에 관계없이 사회지출 삭감에 저항하는 고지식한 이념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은 이념적 헌신의 정도가 덜해서 자산 가격의 변동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이념, 계층, 소득 뿐만 아니라 자산 특히 주택가격은 보편적 사회복지정책과 재분배에 대한 요구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변수이다. 최근의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은 주택을 보유한 대다수의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특히 우파에게!) 미래 위험에 대처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확대를 점차 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을 보유한다는 것은 개인을 위협하는 다양한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물질적인 독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해방전략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보유자산 중 특히 주택은 보편적이고 관대한 사회보장정책이 부족한 한국과 같은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소득상실에 따른 경제적 불안정성의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나도 자산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가지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까?
출처 : 우리복지시민연합 <함께하는 세상> 2023년 2월호 통권 30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