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인_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2021년 8월 19일 9시 30분도 채 되지 않아, 대구고등법원 11호 법정 앞에는 이미 여러 대의 카메라와 기자들, 사건을 지켜보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반여성폭력운동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10시 선고예정인 사건번호000 문00 사건은 마지막에 선고됩니다. 다시 안내해 드릴테니 다른 사건 재판 오신 분들을 위해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몇 번의 안내가 나가고 10시 30분이 가까워서야 진행된 갓갓 문형욱의 재판, 마스크 쓴 판사의 말은 잘 전달되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머리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히 판결을 기다리는 문형욱의 모습이 눈에 와 박혔다.
갓갓 문형욱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음란물제작·배포등) 특수상해 등 총 12개의 혐의를 적용받았다. 텔레그램에서 12개의 N번방을 개설하여 성착취물 3,700여개를 제작·유포하였으며 1,200회에 거쳐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가학적인 성착취 영상물을 촬영하게 하였다. 심지어 피해 청소년 부모에게 성착취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였으며, 경찰을 사칭하는 등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텔레그램 사건의 최초 개설자이자 조주빈, 강훈, 남경읍, 이원호 등 무수한 운영자들이 성착취 방식을 모방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문형욱은 1심 재판부가 선고한 34년에 양형부당의 이유로 항소를 했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거나 반성은 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감형을 받고자 기존의 선고기일(7/22)을 한 달 미루면서까지 피해자들과 합의를 시도하였다. 그럼에도 2심 재판부 또한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 측과 문형욱 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함으로써 1심 재판부의 34년형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며 분노하였다. 이후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이 개정되고 강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이제 우리는 분노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질문해 본다. 과연 문형욱을 ‘갓갓’이게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가? 누가 문형욱을 갓갓으로 만들었는가? 웹사이트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여성의 몸을 거래하면서도(온라인을 기반으로 불법촬영물이 제작, 생산, 유포되면서 거대한 성착취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문형욱이 유포한 영상을 다운 받고, 공유하고, 돈을 주면서까지 보고 싶어 했던 텔레그램 N번방에 들어갔던 30만의 얼굴 없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재미있는 영상으로, 충격적이라는 말로 불법촬영 된 혹은 잘못 유출된 타인의 영상을 여기저기 거침없이 퍼 날랐던 평범한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피해자들의 영상이 아직도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 있다. 무엇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디지털기반성착취의 일부일 뿐이다. 또 다른 갓갓을 만들 수 있는 사람/만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와 당신일 수 있다. 간절히 바라기는 지옥과도 같은 디지털기반 성착취를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길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 분노 없는 연민이 아닌, 나와 당신의 분노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피해자들을 볼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랑의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디지털성착취를 끝장낼 수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출처 : <함께하는 세상>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