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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설밖 생존 영화 ‘어른이 되면’을 대구에서 본다는 것 /김상목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사진=어른이 되면]

‘영웅’과 ‘불쌍함’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글쓴이 김상목

들어가며: 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 영화가 반영하는 현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흔히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나눠서 극영화는 픽션, 다큐멘터리는 논픽션으로 생각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실험이 이어진다. 다큐이지만 마이클 무어의 작품처럼 긴장감과 재미를 위해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연출하거나, 극영화이지만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는 등의 다큐멘터리 스타일 연출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은 현실을 초월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이 상상보다 더 초월적인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다큐멘터리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이면을 조명하는 작업의 문턱을 넘어서면, ‘극영화는 재미없어 못보겠다!’는 이들이 간혹 생기기도 한다.

굳이 안 보고 싶은 사회문제를 담아내는 것만 다큐멘터리의 영역은 아니다. TV에서 볼 수 있는 속칭 ‘TV다큐’들과 자연생태계나 지구환경을 다루는 내셔널지오그래픽, BBC ‘환경다큐’들은 은근히 애호층이 있다.

반면에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온전히 일정 시간 동안 촬영한 것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영화’적 측면으로 극적인 소재를 찾기 위한 사전작업과 최대한 흥미롭고 밀도 있는 ‘컷’을 잡기 위한 여러 가지 테크닉들, 그리고 제작자의 의도가 개입되는 ‘편집’을 통해 상당 부분 인위적인 측면이 가미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는 물론 극영화나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하는 영화 전반에서 그 영화를 만드는 이, 혹은 집단의 정체성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소개할 <어른이 되면>은 다큐멘터리의 강점인 ‘당사자성’이 극대화된 동시에 한국사회 대표적인 소외집단인 ‘장애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또한 유튜브 채널로 지속적인 영상화 작업을 거치며 독자적인 형태의 영상 방송을 거친 뒤(유튜브 “생각많은 둘째언니” 채널에서 소개된 작업을 시청할 수 있다.) 소셜 펀딩을 통해 장편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이 완성됐다.

또, 영화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도서 <어른이 되면>(단행본으로 출판 예정인 <어른이 되면> 관련 정보는 트위터 <생각많은 둘째언니 @Serious_Sister2>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 7월 중순 출간될 예정이다. 상업마케팅 전략으로 널리 쓰이는 “one source multi use” 방식을 적절히 활용해 작업을 중간에 알리고 제작비를 충당하는 방법론적 모범으로서도 주목할 만한 작업이라 하겠다.

1. 시장 후보 꼬리뼈를 검색어 1위로 만든 도시에서 <어른이 되면>을 보는 행위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현역 대구시장으로 재선에 도전한 권영진 후보의 꼬리뼈 골절 여부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대구에서 <어른이 되면>을 소개한다는 것은 단순한 상영회를 넘어 하나의 ‘태도’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선 이미 워낙 잘 알려진, 그리고 일정 부분 종결된 상황이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5월 25일 권영진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420장애인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제공=420장애인연대)

다만 당시 쟁점이었던 장애인 관련 정책협약(420장애인연대는 대구시장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 장애인 복지 공공시스템 구축 강화 ▲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환경 조성 ▲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 체계 강화 등 5개 주제와 관련된 정책 협약을 맺고, 당선 후 공약 이행을 위한 세부 계획 수립을 합의하려 했다.)의 5개 주제 중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과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 체계 강화”에 대한 사회적 논쟁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는 본 작품의 상영은 지난 6월18일 이후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이하 ‘대구장차연’)(대구장차연 150여 명은 대구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권영진 시장에게 ▲탈시설 지원 목표 인원 300명 ▲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사회통합 5개년 기본계획 수립 ▲ 활동보조 24시간 보장 확대 등을 요구했다. 또, 장애인 정책 협의 테이블 구성을 요구하며 권 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의 시청 앞 무기한 노숙농성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해당 논쟁의 생산적 일부로서도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른이 되면>은 13살에 가족을 떠나 속칭 ‘시설’에서 17년을 살아온 동생 ‘혜정’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 언니 ‘혜영’의 6개월간의 자립생활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결심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자립생활은 쉽지 않다. 동생 ‘혜정’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언니 ‘혜영’은 동생을 돌보면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은 영화 전반부에 집중적으로 묘사되며, 유튜브 시리즈 영상에선 더욱 상세하게 해설된다. 그 과정에서 현행 돌봄 지원체계의 한계점과 모순들이 속속 유튜브 채널 시청자와 극장 관객에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적지 않은 다큐나 글에서 ‘폭로’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은 그런 지점들을 분노의 폭발이나 제도 개선 주장만이 아닌, “일상물”로 풀어나가면서도 핵심적인 쟁점들을 숨기기는커녕, 다양한 경로로 제기하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또한 (주로 “둘째언니”의 발언으로 제시된다는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자립생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은 무척 돋보이는 지점이다.

사실 비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온전한 의미의 ‘자립생활’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처한 것이 2018년 현재 한국 사회의 현주소이다. 특히, ‘헬조선’을 자조하는 청년세대가 학자금과 주거 문제 등을 온전히 자립해서 해결해내기가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현실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단지 좀 더 느리거나 다른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서로 자기가 더 불행하다는 ‘불행을 전시하는 세태’에 대한 단호한 하나의 입장이라 볼 수 있겠다.

2. ‘초월적 극복’과 ‘현실적 비참’을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

<어른이 되면>은 한 단계 더 전진한다.

장애인 돌봄 문제가 여전히 ‘가족잔혹사’로 귀결되거나, 공공지원제도가 기본적으로는 확립되었지만 여전히 등급 판정이나 지원범위 및 시간의 제약, 종사자 처우의 문제 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현실에서 <어른이 되면>은 장애인 동생 ‘혜정’을 일방적으로 돌보는 언니 ‘혜영’의 애환이 아닌,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는 가족 간에 보기 드문 일화로 끝날 수 있겠다. 그러나 본 작품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한, 영화 속에 출연하는 ‘혜정’과 ‘혜영’의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이들의 삶에 함께 하고, ‘혜영’ 역시 여러 가지 부탁이나 주문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지원과 연대 요청은 두 자매가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부분이다. 다큐멘터리로서 <어른이 되면>은 장밋빛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시혜적인 독지가가 등장할 리도 없다. ‘혜영’은 스스로 벌어서 자매가 생존한다는 목표의식을 명확하게 표명한다. 작품 속에서 유독 친 가족의 등장 부분이 적은 것은 이런 목표의식을 보여주는 일환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가족잔혹사’와는 선을 긋는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가족들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장치’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분명 장애인 ‘혜정’은 2018년의 ‘헬조선’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비장애인’이라 해서 자립해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갈수록 바늘귀를 통과하기가 되어가고 있다. ‘캥거루족’이라는 용어가 이미 사회적으로 정착할 만큼 부모세대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결국 공동체의, 사회 구성원 간 ‘연대’로 난관을 극복하거나 돌파해야 한다. 두 자매 주변에서 함께 부대끼며 돕는 친구들은 소규모 공동체로서 작동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립’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경계를 넘어 서로 돕는, 상호부조 문제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어른이 되면>에서 두 자매가 추구하는 ‘자립’은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가 초인적으로 곡식을 수확하고 과일나무 숲, 바다에서 기어 나와 고기와 알을 갖다 바치는 바다거북을 누리는 게 아니다. 사회가 장애인의 생활을 조금만 더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시스템의 전제로 탈 시설생활을 설정한다면 자립생활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기반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립’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진 않나, 과연 진정한 ‘자립’이란 무엇인가? 반문하는 웅변인 셈이다.


▲영화 ‘어른이 되면’의 혜정 [사진=어른이 되면]

작품 후반부에서 행사 담당자라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릴만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혜영은 혜정을 억지로 제지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돌출적인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용인해주는 측면을 넘어, 행사 풍경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려는 적극적인 ‘막대 구부리기’ 과정이다. 관객들도 처음엔 질겁하고 조마조마해하다 막판에는 후련함을 느낄만한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축하 파티가 조촐하게 이어진다. 작품에서 거의 처음으로 두 자매 외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러나 더 돋보이는 이들은 두 자매의 자립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친구’들의 존재다.

<어른이 되면>은 아닌 척하면서도 절대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절제된 분노, 부드러운 직선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외적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와 발언을 굽히지 않는 “둘째언니” 혜영(의 시각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의 행보는 무척 인상적이다.

3. 문제는 ‘비용’과 ‘효율’에 강박된 우리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영화 ‘제 8요일’의 한 장면

우연히 <제8요일>이란 영화를 얼마 전에 다시 봤다. 프랑스 영화로 다운증후군을 겪는 청년과 사회적으론 성공했지만 가족과의 불화를 겪는 중년 사이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20여 년 전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담아냈는데, ‘다운증후군’을 겪는 이들을 “몽골”이라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다운증후군’ 당사자를 외모 측면을 비유해 “몽골” 혹은 “몽골리즘”이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이는 동양인과 다운증후군 당사자를 동시에 비하하는 멸칭이라는 사회적 제기로 현재는 사어가 된 표현이다.) 인권선진국, 사회복지선진국이라는 인식과 달리 청년 ‘조지’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다.(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에 인접한 스웨덴에서는 장애인의 탈 시설화가 완료되었다. )‘조지’를 돌보던 어머니는 이미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조지’를 돌보느라 소외되었던 조지의 누나는 이제 지쳤다며 자기의 삶을 살고 싶다며 자신을 찾아온 동생을 외면한다. 그저 가족의 애환으로 보였던 장면은 그렇게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 프랑스와 현재의 한국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스웨덴은 여러 선구자들의 다년간의 선도적인 노력으로 사회적 실험을 거쳐 <제8요일>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탈 시설화를 완료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차이는 국가가, 사회가 가지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과 기반인 유튜브 영상들에서 언니 ‘혜영’이 “같은 인간으로서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이 ‘호텔급 시설’에 수용된다고 과연 인권과 복지를 존중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라며 던지는 질문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교육권을 위해 ‘특수학교’를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방법론에도 문제를 제기하려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강서구 등에서 특수학교 건립을 주민들이 부동산 가치 하락 등의 이유로 결사반대하는 나라에선 먼 미래 이야기처럼 들릴 지경이긴 하지만)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 ‘시민’들 사이에서 효율과 비용 등을 이유로 마치 정글에서 살아남는 ‘강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될 이유는 없다는 강력한 정치적 주장이 비수처럼 숨어 있는 <어른이 되면>은 감독이기도 한 “둘째언니” 혜영의 목적처럼 지역사회 여기저기에서 거론되고 쓰일 경우 ‘파문’을 일으킬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다시 현재의 대구로 돌아온다. 시설에서 살아가는 이가 전국에 3만 명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인구비례로 계산하면 대구에만 약 1,500명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대구에서 탈 시설 장애인은 40명 정도라고 한다. 현재 대구장차연이 요구하는 탈 시설 지원은 300명 선이다. 대구시청 관계자는 예산 문제를 호소한다. 대구장차연의 요구는 나름대로 그런 제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양쪽 다 절충을 통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으로서의 ‘지향’은 명확해야 한다. 대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희망원 사태 등 과거만이 아닌 업보를 갖고 있다. 한계도 있을 것이고 시간이 걸릴 문제기도 하지만, 더 이상 ‘호텔’ 같은 시설에 수용하는 게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가능한 대안’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

<어른이 되면>은 그런 ‘거대한 전환’을 위해 작은 주춧돌 하나쯤은 능히 될 만한 영화다.

[작품정보]
어른이 되면 Grown Up
한국|2018|98‘|다큐멘터리|전체관람가 |감독 장혜영(생각많은 둘째언니)
 * 16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2018 <개막작>
 *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18 <한국장편경쟁-심사위원특별언급>

[상영회 정보]
일시 : 2018년 7월 4일(수) 19:30
장소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주최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조직위원회
 부대행사 :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 이 글은 뉴스민 (http://www.newsmin.co.kr/news/32004/)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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