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복_미래복지사회연구소장
지난 연말 대구의 모 병원에 직장교육 강의를 하러 갔다. 최근 대부분의 직장이 그렇듯이 성희롱예방교육, 안전교육 등 의무교육을 모아서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일 가정 양립의 이해와 실천’ 교육을 넣었다. 내가 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출산 장려 교육’을 하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그 강의의 주요 내용은 “현재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며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지금은 국민 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으나 앞으로 35년이 지나면 2명이 노인1명을 부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회에 무리가 오게 되고 국가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출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강의할 때 인용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강의를 듣고 있으면서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나는 출산과 관계가 먼 시기가 되었지만 ‘앞으로 닥칠 문제가 국민들이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므로 그 책임은 너희에게 있다’는 느낌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강의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어 앞에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강의준비를 해놓고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앞의 강의를 듣다보니 화가 치밀었다. 아니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 낳지 않냐, 국가가 아이들 육아와 보육을 책임져 주면 누구나 아이를 낳을 것 아니냐. 아이들 육아와 교육, 노후를 책임져주는 선진국이 세금과 사회보장비용을 수익의 45%정도를 내고 있는데, 우리도 직장인들은 25%를 내고 있는데 노후는커녕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곳도 없고 교육도 고액의 사교육에 맡기고 있는데 무슨 수로 아이를 낳겠는가? 세계 15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우리나라 정도면 육아든 노후든 하나는 국가가 책임질 수 있다. 방산비리나 원전비리, 최순실 같은 사람에게 들어가지만 않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육아와 교육, 노후를 책임져 준다면 나는 50%의 세금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나의 강의를 시작하여 짧게 마쳤다.
최근의 국정 사태나 사회 현상을 볼 때, ‘실태를 바르게 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 경험, 문화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본질을 알아차리는 관점과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누구를 위해 그 일을 했는지 원칙적으로 따져 보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 중심은 당연히 “다수의 국민”이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용해먹을 사람이 그 중심에 있다. 만약, 그 옛날 국가를 위해 지도자가 됐던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고, 우리 국민을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 인가를 고민했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권, 금권, 직권을 버리고 국민을 위한 사회연구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회를 만들면 국민들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민주주의사회건, 사회주의사회건, 그 본래의 뜻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면 이름과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국민이 주인이 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를 낳기 보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하는 세상>은 엄기복 회원의 <복지현장 이야기>를 통해 사회복지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출처 : 함께하는 세상 2017년 1월호 통권 23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