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칠_감독‧제7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얼떨결에 제7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타지 사람이라 지역의 상황에도 밝지 못하고, 6회까지 영화제가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도 알 수 없기에, 장님 코끼리 만지듯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6회까지 집행위원장을 해 오신 김상목 프로그래머가 준비를 많이 해놓으신 덕에, 몇 가지 수정만 거친 끝에 영화제 선정작들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제 내내 관객 분들의 짤막한 소감 한 두마디에 귀 기울이려 했고, 낙서판에 적힌 관객들의 영화평들도 눈여겨 봤습니다.
예상했던 반응들도 있었고, 이외의 것들도 있었습니다. 먼저 역시나 많은 관객분들이 다큐멘터리는 낯설어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평일 낮에 노조 교육 때문에 단체 관림을 오신 4~50대의 사무직 종사자들은 다큐를 틀자마자 취침모드로 들어가셨습니다. 평소 영화 관람은 멀티플렉스의 블록버스터로 한정되어있고, 격무와 수면부족에 시달리시는 분들이니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분들도 <콰르텟> 같이 노년을 다룬 극영화를 볼 때에는 남얘기 같지 않다며 재밌게 보셨다는 점입니다. 이 외에도 역시나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에 대한 호응이 높았습니다. <아고라:민주주의에서 시장으로> 같이 그리스 사태를 촘촘하게 해부한 영화나,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 같이 거대자본에 맞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영화, 그리고 <가스톤의 부엌>처럼 요리라는 보편적이고도 군침도는 소재가 나오는 영화들은 비록 다큐이지만 재밌다는 반응이 제법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일매일 알츠하이머>에서 의외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알츠하이머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와 사적 다큐멘터리라는 단조로운 형식 때문에 걱정이 앞섰던 영화이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습니다. 영화 속 할머니의 귀엽고 유쾌한 캐릭터와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가 공감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대구사회복지영화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이 영화제가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은 전공자와 사회단체 활동가들도 찾지만, 학교 과제 때문에 오는 대학생이나 노조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시는 중년의 노종조합원들도 있습니다. 연령과 배경이 모두 달라, 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이상적인 영화는 없겠지만, 다양하고 풍성한 영화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이들의 다양한 고민과 욕구에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제에서 다뤄지는 사회 이슈를 접해보는 관객분들을 위한 배려도 더 많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이 어려운 영화의 경우, 관련된 자료를 사전에 복사해서 나눠주거나, 사후에도 관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의 통로들을 열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 표현의 자유를 다룬 영화 이후에는 "부산영화제 시키기" 서명운동을 받고, 탈핵을 다룬 영화를 보고 나서는 녹색당이나 환경운동 단체의 부스가 차려지고, 그리스 사태를 다룬 영화 이후에는 경제학 세미나를 제안하는 손길이 이어졌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래야만 영화제가 영화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일상화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보다 업그레이드된 8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를 기대해봅니다.
출처 : 함께하는 세상 2016년 4월호 통권 22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