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이 어려운 아버지를 간병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아들, 이른바 ‘간병살인’을 저지른 청년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간병지옥’, 더 나아가 살인으로까지 확대되는 이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말고 정부와 국회, 정치권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11월 17일(수) 오전 7시 20분 광주MBC ‘황동현의 시전집중’에 약 8분간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이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내용를 다시 정리하고 추가하여 이 사건을 조명해 봅니다.
1. 스물 두 살의 청년이 저지른 ‘간병살인’… 어떤 사건이었는지 먼저 내용부터 정리를 해 볼까요?
20대 청년 A씨는 아버지가 지난해 9월 13일 경에 뇌출혈로 쓰러져 약 8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오던 중에 병원비 부담으로 올 4월 23일경에 아버지를 퇴원시켰고, 집으로 온 이후 간병을 한 지 일주 만에 아버지의 치료식과 물을 끊어 5월 8일 어버이날에 아버지를 사망케 한 사건입니다. 병원에서 퇴원 당시 정상적인 음식섭취가 불가능하고 대소변을 가릴 수 없었으며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가 반복되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요. A씨는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법적인 보호의무자 임에도 방치함으로써 결국,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8월 1심과 최근 11월 2심 모두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 아들이 아버지를 방치해 죽게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배경은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이번 사건은 1심때부터 뜨거운 이슈였는데요. 지난 8월 1심 판결때에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죽게 한 폐륜아로 몰려 그 책임을 묻는 보도가 나왔다면, 2심 전후로는 생활고에 허덕이던 청년의 어려웠던 사정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특히 정치권에서 선처를 호소하기도 해 상반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A씨는 초등 1학년때부터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대구에서 살았고, 공장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작년 4월에 갑작스럽게 쓰러져 거의 마비가 된 채 누워서 생활하다 보니 약 8개월 동안 무려 2천만원의 병원비를 삼촌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병원비의 대부분은 또 간병비입니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거죠. 깻잎 장아찌로 한 달을 버텼고, 공익근무를 위해 휴학했던 A씨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난해 9월 이후 간병을 이어왔으나 막대한 병원비를 구할 수가 없었던 데다, 가스, 전기, 휴대전화 모두 끊길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3. 국가의 복지 시스템은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었는지?
이 부분이 가장 큰 쟁점입니다. 이 사건을 보고 A씨가 간병비 지원이나 생계 지원 등을 받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잖아요. 아버지가 올 4월 퇴원하기 전에 삼촌이 생계지원, 장애지원 등을 받기 위한 관련 절차를 알려주며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상담을 권했는데, A씨는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거나 지원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어 이 부분 또한 아버지의 죽음과 맞물려 논란거리입니다. 만약, A씨가 직접 행정복지센터에 갔거나, 병원에서 치료비 부담으로 퇴원하는 경우 행정복지센터로 직접 연결을 했었으면(이 병원은 사회사업실 없었고, 상급종합병원에서 일부 실시하고 있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혜택은 물론 수급자로 지정되는 절차를 밟는 동안 긴급복지대상자로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간병비는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에서 비급여 항목이고 56세였던 아버지는 65세 이상만 받을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요양급여도 신청할 수 없었다는 거죠. 다시 말씀드려, 기존 제도로는 의료 혜택 등 일부는 지원받을 수 있으나 이번 사례처럼 비급여인 간병을 완전히 책임질 수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도의 도움을 받았으면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모는 끔찍한 결정을 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판단은 사건 이후 복기하는 과정에서의 결과론적인 얘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의 갈등마저 최대한 제거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또한, 기존의 복지제도를 이용하려면 당사자가 신청해야만 가능한데 아직도 제도를 모르거나, 사각지대 발굴차원에서 가스·전기가 끊기면 빨리 행정복지센터로 연락이 되어야 하는데, 5월 8일날 사망했음에도 명단은 5월 10일 통보되었으니 이 같은 뒷북대응이 없도록 사회복지전달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4.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봐줄 다른 가족도 없었던 건지?
의지할 만한 가족이 그리 많지 않았고 삼촌이 거의 유일했다고 보여집니다. 삼촌이 병원비 2천만원 정도를 도와주고, 쌀, 라면 등 생활물품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버지를 퇴원시키게 되었고, 그러자 이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5. 1심에 이어 최근 2심에서도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처장님은 이번 판결… 어떻게 보셨는지?
1심 법원은 아버지가 퇴원한 이후부터 A씨가 처방받은 약 투약을 하지 않은 사정 등을 고려해서 살해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고 2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살해의 고의까지 인정되지 않는다면, 형법상 존속유기치사와 같은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데 법원은 그보다 더 중한 존속살해의 고의를 인정했고 항소심 재판부도 이를 그대로 유지했는데요. 다만 존속살해 최소형이 7년형인데 비해 법원은 어린 나이에 아무런 경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건강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피해자를 기약 없이 간병해야 하는 부담을 홀로 떠안은 부담으로 미숙한 판단을 한 점을 인정해 4년 형을 확정했습니다. 그래서 유죄는 맞지만, 이번 사건의 쟁점은 부작위 존속살인이냐? 유기치사냐?로 2심에서 다투었는데요. 재판부는 법률상 ‘보호 의무가 있는 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부작위 존속살인으로 봤습니다. 재판부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제도 사각지대인 간병 의무를 짊어진 청년의 처지와 그 과정을 대법원에서 다시 한번 더 세심히 살펴볼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6. 이런 간병살인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이른바 간병살인이라 할 만큼 간병비 문제는 심각합니다. 간병비는 재난적 의료비 폭탄의 주범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비급여로 남아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비, 간병비 등 이른바 ‘3대 비급여’의 환자 부담을 줄이겠다고 국정과제를 설정했음에도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비는 개선되고 있는 반해 간병비는 여전히 환자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간병의 경우, 급성기병상 중심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지만 역부족이고, 요양병원은 현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대상이 아니다 보니 국가가 간병서비스를 시장에 맡겨놓고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간병의 경우 가족이 간병하지 않으면 하루 10만원 이상 한달 300~400백만원이 들어가 메디컬 푸어를 생산하는 주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긴 병에 효자가 없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이유인데요. 비단 이번 사건처럼 영케어러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의 간병도 있고, 배우자의 간병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령화 사회에 맞게 서둘러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7. 간병의 노고나 비용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번 간병살인 같은 사건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것 아닌지?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같은 상황이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사한 사건이 이번에 처음이 아니라 지금까지 쭉 발생해 왔다는 겁니다.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 그 당시만 잠시 여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땜질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그동안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거죠. 우리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 현실 속에서 앞으로 이런 '청년 간병인' 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런 청년 간병인이 현재 3만여명으로 추정됩니다. 청년간병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위한 면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한데요. 특히 간병비나 생활지원 등 못지 않게 청년간병인들이 간병을 하면서도 학업이나 취업 등을 포기하지 않게 제도적 지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유사한 비극적 사건을 우리 사회는 계속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8. 간병과 돌봄의 책임은 국가에게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돌봄의 문제를 효심에 기대어 가족에게 맡기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고요. 사회적 돌봄, 국가적 책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도 사실 이 방향으로 가고 있고, 또 맞춤형 복지를 한다고 하는데, 이번 사건처럼 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넓고 안전망을 갖추는데 너무 느려 맞춤형은커녕 찾아가는 보건복지도 못했다는 것이 드러난 거죠.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요란스럽게 제도개선을 약속하고 예산,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하지만, 신속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시민들이 체감도를 못 느끼는겁니다. 간병과 돌봄의 문제를 시장에 맡기고 가족에게 맡기는 이상 이런 비극적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정부가 우선적으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합니다.
9. ‘간병살인',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조금씩 달라도 비극적 죽음과 안타까운 사연들이 우리 사회에 알려지면서 역설적으로 이들의 죽음 위에 제도가 조금씩이라도 확충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부분인데요. A씨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살인죄까지 쓰지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간병인들, 혹은 홀로 간병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고 3일에 한번 꼴로 소위 간병살인이 일어난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비 때문에 퇴원해야 하고 죽어야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나이가 있는 기성세대는 상대적으로 경험, 자산, 돈이 있는 반면 청년 간병인은 경험, 돈도 없고 간병으로 인해 자신의 꿈과 미래마저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청년 간병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반드시 제대로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