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는
의료특별시가 아니라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도시였다. 정부는 ‘보건부’신설, 질병관리본부 ‘청’승격,
대구시는 ‘보건국’신설과 ‘대구질본’설치를 요구한다.
정부, 국회, 대구시는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라.
폭발적인 코로나 19 전파지역이 된 대구·경북지역의 전염병 재난으로 사망자 중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집이나 이송과정에서 사망한 비율이 20% 정도라는 소식은 시·도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0여 년간 추진한 대구의 대표브랜드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는 코로나 19 앞에서는 무기력하기 그지없었다.
입원할 병실이 부족하여 집에서 입원 대기 환자가 수천 명에 이르고 집에서 사망하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했다.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일반 환자를 비우고 급조한 이동 음압시설 중환자실에는 코로나 19 중환자로 가득 차 있다. 이것도 부족하여 다른 지역 의료기관의 중환자실로 전원을 시켰다. 물론 대구 감염환자가 하루 700명을 넘고 누적환자 수가 6천 명을 넘다 보니 대구뿐 아니라 어느 지역도 감당할 수 없었다며 항변할 수 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 이 같은 해명은 맞는 말일 수 있으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대구에서 코로나 19 대유행이 발생했고, 대구 의료시스템이 허무하게 무너진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코로나 19 대유행은 대구에서부터 나아가 한국사회를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개조해야 하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아직도 소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해 안심할 수 없고, 확진 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대구경북보건복지단체연대회의는 코로나 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조기 대응을 위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대안을 지금부터 논의할 것을 주장하며, 우리의 요구를 밝힌다. 우리의 요구는 전국적으로 비아냥거리로 전락한 ‘메디시티 대구’가 허약한 속 빈 강정이 아니라 ‘공공의료의 산실’이 되어 신종 감염병에도 끄떡없는 건강한 체질의 대구,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첫째, 중앙정부는 ‘보건부’를 신설하고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켜 재난에 대비하라.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보건복지부의 신뢰는 곤두박질쳤고, 반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대단히 높다. 이렇게나마 코로나 19를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질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에 질본을 ‘청’으로 승격시켜 (신종)감염병 대응의 중추 역할을 시키고, 보건복지부를 ‘복지’와 ‘보건’으로 분리하여 ‘보건부’를 신설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각종 신종 감염병 위험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고, 의료인력의 부족은 의료현장을 언제든지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으며, 고령화된 사회에서 시민의 생명과 건강 불평등, 혐오와 차별은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코로나 19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욱 높여나가기 위해서라도 보건부의 신설은 필요하다.
둘째, 정부와 국회, 대구시는 공공의료를 확대, 강화하라.
제2 대구의료원 설립과 대구적십자병원의 재개원을 강력히 요구한다.
대한민국의 병상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병상 수는 천 명당 4.7개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약 12.3개로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2위이다. 그러나, 이 병상 중 공공병원의 비중은 10%로, OECD 국가 중 꼴찌이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에서 공공병원의 병상 부족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구지역 국가지정 격리병상 19개를 넘어 공공병상 350개도 음압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하루 확진자로 바로 채워졌고, 지역 민간의료기관을 총동원시켜 음압시설도 갖추지 않은 상태로 환자를 입원시켰다. 의료기관의 의료진들은 준비 안 된 상황에서 부족한 의료인력을 전국에서 자원한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로 채워졌다. 지금은 코로나 19의 기세가 약간 꺽이긴 했지만, 2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입원을 기다려야 했고, 이 환자 중 치료를 제때 못 받아 집에서 사망한 이도 여러 명이다. 2010년 폐원하면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대구적십자병원 재개원은 물론, 250만 대구시민의 건강을 위한 감염병전문병원인 제2 대구의료원의 개원을 강력히 요구한다.
셋째, 대구시는 ‘보건국’을 신설하고, 질본이 직접 운영하는 ‘대구질병관리본부’를 설치하라.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는 전국적으로 감염병관리지원단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대구도 1년 6억(국비와 시비 50대50)의 예산으로 경북대학교병원에 위탁 운영 중이나 위상은 대구시 지원에 불과하고 재정과 인력은 늘 부족해 한계가 많았다. 그러나, 대구시 코로나 19 사태 해결을 위해 역학조사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대구 내 전체 병상 수는 약 3만 병상으로 대구에 잘 훈련된 감염병 전문 인력의 양성과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질본이 직접 운영하는 명실상부한 공공조직으로 ‘대구질병관리본부’ 가 반드시 필요하다. 질본이 ‘청’으로 승격되기 전이라도 대구시가 우선 설치,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구시 직제에서 보건복지국이 코로나 19 대구 대응의 상황실 역할을 하지만, 사실상 보건복지국 내 ‘보건과’에서 직접적인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엄청난 재난을 한 ‘과’에서 담당하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문성도 매우 취약하고 일사불란한 대응과 수습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대구시는 조직개편을 통해 ‘보건국’을 신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대구경북보건복지단체연대회의는 이번 코로나 19 대유행의 조기 종식을 기대하며, 대구, 더 나아가 한국사회가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하여 예산을 집중하고, 법·제도를 만들 것을 계속해서 요구해 나갈 것이다. 이것이 코로나 19 대유행의 교훈임을 중앙정부, 국회, 대구시 모두 명심하길 바란다.
2020년 3월 19일
대구경북보건복지단체연대회의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대경지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경지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행동하는 의사회 대구지부,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 의료연대 대구지역지부, 보건의료노조 대경본부, 우리복지시민연합)
